중국 축구, 왜 실패했는가? – 인구 대국의 아이러니
중국은 인구 약 14억 명, 세계 2위 경제대국이라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축구에서는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월드컵 본선 무대에 다시는 오르지 못한 중국 축구의 현실은 많은 축구 팬들에게 의문을 안깁니다. "중국 축구는 왜 이토록 못할까?"라는 질문은 단순한 경기력 저하의 문제가 아니라, 그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에 기인합니다.
1. 시스템보다 권력이 우선하는 구조
중국 축구 실패의 핵심 원인 중 하나는 탑다운 방식의 비효율적 구조입니다. 유럽 축구가 지역 동호회와 아마추어 클럽으로부터 성장해 수십 년간 자생적인 축구 생태계를 구축해 온 반면, 중국은 정부 주도의 탑다운(Top-down) 정책으로 리그를 '만들어놓는'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2015년 시진핑 주석이 제시한 '축구 굴기' 전략 이후, 아카데미 2만 개 설립, 축구장 7만 개 조성 등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지만, 이는 자생적 성장보다는 보여주기식 확장이었습니다. 실제로 리그의 피라미드 구조가 약해 grassroots 시스템이 자리잡지 못했습니다.
2. 부패와 입찰 논란
중국 축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부패 문제입니다. Transparency International의 2023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중국은 180개국 중 74위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아시아 주요 경쟁국인 일본(18위), 한국(32위)보다도 낮은 수치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2000년대 중국 국가대표를 지낸 선수의 폭로입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대표팀 최종 명단의 일부는 암묵적으로 ‘입찰’이 이뤄졌다”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서드 골키퍼 같은 실전 기회가 적은 포지션은 '가장 높은 돈을 낸 사람'이 자리를 차지한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실제로 2020년대 들어 축구협회 고위 인사와 감독들이 금품수수 혐의로 줄줄이 수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3. 선수 육성보다 학벌과 관계
중국의 청소년 축구 육성 시스템은 유럽이나 일본, 한국에 비해 현저히 취약합니다. 학교 중심의 학원 스포츠 시스템이 주를 이루며, 축구를 선택하는 학생은 ‘공부에 실패한 아이들’로 낙인찍히기도 합니다.
게다가 오랫동안 1가구 1자녀 정책이 시행되어 온 탓에, 부모들은 외동 자녀를 위험하거나 불안정한 길로 보내길 꺼립니다. 이로 인해 유망주 수 자체가 적고, 경쟁과 밀어주기 문화가 맞물려 실력이 아닌 ‘백’으로 올라가는 구조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4. 탑리그 16개팀, 광대한 땅덩이에 부족한 시스템
중국은 브라질, 미국처럼 대륙 단위의 광대한 국가입니다. 그러나 중국 1부 리그인 슈퍼리그는 2024년 기준 단 16개 팀에 불과합니다. 이는 각 지방 도시의 축구 수요를 반영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치입니다.
지역 아마추어 리그나 유소년 리그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현실에서, 중국 축구는 최상위 일부만 존재하고 중간과 바닥이 없는, 거꾸로 된 피라미드 구조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경기를 할 기회가 부족하니 실력 향상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5. 보여주기식 투자와 단기적 성과주의
중국은 2016년부터 알리바바, 완다, 수닝 등 거대 기업들이 축구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습니다. 인터 밀란, 울버햄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 유럽 클럽 지분을 매입하며 글로벌 영향력 확장을 꾀했지만, 이는 대부분 2020년대 들어 철수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부동산 불황과 정부의 해외 투자 규제로 인해 자금줄이 막히자, 이러한 외형적 투자들도 더 이상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실속 없는 대외 과시는 장기적 인프라 구축이나 리그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지 못했던 셈입니다.
결론: 문제는 ‘축구’가 아니다, ‘시스템’이다
중국 축구의 실패는 단순한 전술의 문제가 아니라, 축구 생태계 전반의 제도적, 문화적, 구조적 실패입니다. 자생적으로 성장하는 생태계가 아닌, 위에서 찍어 누르고 돈으로 해결하려는 접근은 일시적인 성과만을 낳을 뿐 지속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이 진정으로 월드컵 본선 단골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합니다. 축구는 그 나라의 문화와 시스템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중국 축구는 그 거울 속에 분열된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